에이브릴 라빈, 펑크를 입은 팝스타? 클릭과 소비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클릭, 수치의 시작
2002년 데뷔한 캐나다 출신 뮤지션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은 ‘클릭의 법칙’이 만든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 중 하나다. 펑크의 옷을 입은 10대 소녀 록스타, 듣기 편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 모델 뺨치는 아름다운 외모. 노래보다 먼저 보여졌고, 들리는 순간엔 이미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반응하는 헤드라인들. 의식보다 빠르게, 인지보다 앞서 발생하는 ‘클릭’. 저급하고 식상하며, 뻔하다는 걸 알지만 대중은 클릭한다. 이 클릭은 수치가 되어 기록되고, 수치는 종종 콘텐츠의 가치가 된다.
클릭의 법칙, 모든 영역으로
이 같은 메커니즘은 언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 영화, TV 프로그램, 셀럽, 모든 영역은 ‘클릭의 법칙’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진정성이나 무게, 가치보다 먼저 눈과 귀에 쉽게 들어오는 것, 콘텐츠는 이야기이기보다 썸네일이고, 감정이기보다 컨셉트에 가깝다. 에이브릴 라빈의 음악은 내면의 철학이나 번민이 아닌 보편의 감정을 심플하게 이야기했고, 스타일과 톤으로 록 스타를 표방했다. 감수성의 감도는 깊은 곳까지 닿지 않았지만, 대중의 소비는 굳이 그 곳까지 도달할 필요도 없었다.
단순함, 시스템 1의 승리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 과정은 크게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시스템 1’과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시스템 2’로 구분된다. ‘클릭’은 시스템 1의 결과다. 무겁고 진지한 메세지는 귀찮은 데다 정신적 에너지 소모도 많으니 쉽게 이해되고 바로 느껴지는 자극에 손이 먼저 반응한다는 것이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듣고 교감하는 음악’이 아닌 ‘반응하는 음악’으로, 감상보다 편리한 자극이 앞서는 구조, 에이브릴 라빈의 성공은 ‘시스템 1’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에이브릴 라빈의 음악은 밝은 분위기의 곡부터 어두운 감성의 곡까지, 대체로 단순하고 명확하다. 중간 템포의 4코드 진행, 반복되는 훅(hook), 심플한 가사, 단선적인 감정 구조까지.
가벼운 공감, 무게는 없다
그의 대표곡 ‘스케이터 보이’(Sk8er Boi), ‘나의 해피엔딩’(My Happy Ending), ‘당신이 나를 떠났을 때’(When You’re Gone) 등은 곡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별다른 해석과 인내, 혹은 사유가 필요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디는 캐치하고 후렴은 시원하게 귀에 꽂힌다. 워낙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노래 덕에 ‘투모로우’(Tomorrow), ‘아무도 없는 집’(Nobody‘s Home), ‘달링’(Darlin) 등의 곡은 이따금 ‘감정의 가장자리’ 또한 제법 건드리지만,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내면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진 않는다. 즉 듣는 이의 감정을 완전히 끌어내지는 않은 채, 적당히 터치하고 넘어가는 식이다. 가벼운 공감, 무게는 없다. 그래서 적적할 때면 자연스럽게 찾아 듣게 된다.
겉만 펑크, 본질은 팝?
여기에 에이브릴 라빈의 시각적 스타일과 표면적 언행은 과거 ‘성공한 펑크 뮤지션’을 표방하고 있었다.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 체커보드 패턴, 약간은 건들거리는 제스처, 인터뷰에서의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톤까지, 에이브릴 라빈에게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은 선대 록 스타들의 표현법과 닮아 있었다. 때로는 당시 유명 팝 스타인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등 ‘안티-팝’적인 태도를 고수했던 부분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작 에이브릴 라빈 스스로는 너무도 명백히 팝 스타의 성공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전형적인 ‘팝스러운’ 멜로디와 구성, 음반 제작 방식, 명확한 타겟 팬덤층 등 그는 데뷔와 동시에 팝 스타의 성공 로드맵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으며, 쉽게 듣고 빠르게 반복 소비할 수 있는 트랙들과 소녀성이 담긴 음악적 감성 코드들은 표현방식만 미묘하게 다를 뿐 그가 비판했던 팝 스타들과 본질적으로 유사했다.
본질 vs. 성공,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에이브릴 라빈이 가수로서 성공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수천만장의 음반 판매고, 차트 기록, 그래미 노미네이트, 그리고 끊임없는 소비, 소비, 소비. 분명 그는 시장이 요구하는 모든 성공 요건을 충족시킨 뮤지션이었고, 특정 시대의 감성과 문화산업구조가 예측한 대로, ‘에이브릴 라빈’이라는 기획되고 포지셔닝된 결과물은 거의 완벽하게 대중에게 전달됐다. 정제된 반항, 포장된 펑크, 모든 자극은 대중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되었다. 아쉽게도 에이브릴 라빈을 ‘진짜 록 뮤지션’이라고 생각하는 음악 팬들은 많지 않다. 대중은 반응했고 시장은 환호했지만 그 반응과 환호의 층위는 경외나 감동이라기보단 반복적인 클릭과 재생의 형태에 가까웠다. ‘보이니까’ 듣고, ‘익숙하니까’ 소비하는 구조. 그리고 그렇게 본질은 스크린의 속도에 밀려났다.
결론: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우리는 ‘성공’이라는 단어에 담긴 진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쉽게 클릭되고, 반복 재생되고, 알고리즘에 환대받는 음악과 기사와 영상, 그리고 모든 콘텐츠들. 익숙함은 곧 호감이 되고, 호감은 소비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반복이 잦아질수록 콘텐츠는 성공이라 불리는 궤도에 진입한다. 의도된대로, 그리고 기획된대로. 성공은 소비자에게 귀속된 개념이지만, 그 소비가 언제나 자율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클릭한다. 의식적 선택이 아닌, 유도된 헤드라인과 캐릭터와 음악을. 시장은 항상 반응을 설계하고, 미디어는 프레이밍하며, 대중은 무의식 중에 그 프레임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유도당한다. 어디까지가 대중의 자율이고, 어디서부터가 시장의 전략이었을까.
자주 묻는 질문
Q.에이브릴 라빈의 음악이 왜 대중적으로 성공했는가?
A.그녀의 음악은 듣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 펑크 스타일, 모델 뺨치는 외모 등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소비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Q.에이브릴 라빈의 음악이 '진짜 펑크'와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그녀의 음악은 록의 형식을 빌리고 반항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펑크 정신의 깊이 있는 내면을 담아내기보다는 팝적인 성공 방식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Q.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A.우리는 클릭, 반복 재생 등 쉽게 소비하도록 유도되는 콘텐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의 전략에 따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